▲ 박지연 법무법인PK 대표 변호사

몇 년 전부터 시작된 MBTI(성격유형지표) 열풍이 식질 않고 있다. 이제 MBTI는 누군가와 대화할 때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상식’이 되어가는 수준이다. 80억 명이 넘는 인구의 성격을 겨우 16개의 유형으로 세분화한다는데 반감이 들면서도, 누군가를 이해하는 꽤나 흥미로운 도구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필자는 MBTI유형 중 사건과 논리를 중시하는 ‘사고형’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런 성향 탓인지 고민을 토로하는 친구의 감정을 공감하기 보다는 고민되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친구의 고민을 끝까지 들어주기 보다는 빨리 사안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친구를 상대로 취조에 가까운 문답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공감은 순간의 위로일 뿐,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것이 진정으로 친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 믿었기에 취조를 닮은 대화는 전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달 전, 필자의 생각을 바꾸게 된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어느 날 저녁, 오랜 지인으로부터 강제추행으로 고소를 당했다면서 A씨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A씨는 자신은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고, 너무 억울한 상황이라며 두서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사건에 필요한 문답부터 했겠지만, 그 날은 어째서인지 A씨의 말을 끊고 싶지 않았다. A씨는 고소인과의 대화내용이 담긴 녹음 파일을 모두 재생한 후, 고소인을 알게 된 경위부터 고소인이 평소 담배를 피운다는 이야기까지 길게 늘어 놓았다. 어느 새 상담을 시작한 지 한 시간이 다 되어 갈 무렵, 빨리 사건과 관계있는 내용만 확인하고 상담을 종료해야겠다는 생각에 A씨의 말을 자르려는데, 별안간 A씨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빨리 A씨를 진정시키려는데, A씨는 울먹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사실 여기 오기 전 여러 군데 상담을 다녔는데, 녹음파일을 모두 들어보고,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신 분은 처음입니다.”

순간 필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A씨를 진정시켜 해결책을 찾으려 했던 필자의 조급함이 들켰을까 부끄러워졌다. 다행히 A씨는 필자의 표정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사건을 맡겼고, 필자는 고소인이 담배를 태운다는 A씨의 이야기를 단서로 고소인의 진술을 뒤집을 정황증거를 찾아 내 수사기관에 제출했다. 그리고 지난 달, 사건은 불송치로 종결되었다.

A씨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타인의 입장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것만이 공감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식의 공감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A씨와의 상담을 통해 타인이 원하는 공감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하는 것이고, 경청이 진정한 문제해결의 시작임을 깨닫게 되었다.

다시 MBTI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사고형이라고 하여 타인에 대한 공감을 등한시 할 수 없고, 감정형이라고 하여 사건에 대한 분석과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포기할 수 없다. 어떠한 성격유형이든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에서 시작해 보자. 분명 공감과 해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이니.

박지연 법무법인PK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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